Seunghyun Y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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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 Anxiety

외국에서 공부한다는 것은 꿈만 같은 일이었다. 그러나 미국에 오자마자 한 달도 되지 않아 나의 정서를 강렬하게 지배했던 것은 ‘두려움’과 ‘걱정’이었다. 내가 잘 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도 겪어야 했다. 운명이라 서로 불렀던 사람은 안 좋은 쪽으로의 운명이었다. 한동안은 직접적인 해꼬지를 당할 수 있다는 편집증적인 괴로움이 내 마음을 지배하였다. 그런 와중에 동시에 랩을 바꾸고, 연구 주제를 다시 잡고, 해야할 일들을 해치우고, 뭐 그럭저럭 지금까지는 어떻게 버텼던 것 같다. 하늘이 레몬을 주면 나는 레몬에이드라도 만들어야 한다는 심정으로 했다. 경험이 많은 교수님들은 학생의 표정만 봐도 어떤 문제인지 바로 파악하신다.

진짜 생산성을 올리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두려움’과 ‘걱정’이라는 감정 없이 순수하게 어떤 일에 몰입하고 성취감을 느껴야 한다. 하루 종일 코딩을 하거나 공부를 하면 힘들다기 보다는 즐거운 감정이 솟아나야 하는 것이다.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하는 ‘노동’의 과정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놀이’의 과정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어찌되었건 좋은 감정으로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최고 아닐까. 최근 3년간엔 그런 성취감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강화 학습에서 그렇듯이 좋은 피드백이 오면 신나서 계속 하게 되고, 안 좋은 피드백이 오면 점점 의욕을 상실하면서 무기력증에 빠지게 된다. 게으름과는 분명히 다른 상태다. 해야한다는 것을 이성적으로 이해하지만 도무지 그 일을 시작하려고 하는 순수한 동기가 사라지고야 마는 것이다.

만약에 내가 단순 작업을 한다면 이런 상태에 빠지더라도 그럭저럭 일을 해나갈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마음가짐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되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고도의 procrastinator가 되버리고 만든 것이다. 이런 마음 상태를 디버깅을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의 두뇌는 세 가지 부위로 나뉘어 있다고 들었는데, 파충류의 원초적인 호/불의 감정, 포유류의 감정, 그리고 인간의 이성이 그것이다. 지적 성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인간의 이성(전두엽이라고 해두자)을 최대한 활용하여야 하는데, 포유류의 감정이나 심하게는 파충류의 두뇌 부위에 이해 다른 모든 부분들이 마비가 되는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이 들면 나 자신을 객관화하여 내가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이성적으로 이해하도록 노력하곤 했다. 이런 행동을 통해서 그런 원초적인 감정이 신경망을 지배하도록 두는 것이 아니라, 이성이 컨트롤할 수 있도록 negative feedback회로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시스템은 안정적으로 돌아가고 크게 발산하는 일이 없다. 나는 좌절감이나 화나는 감정 하에서는 이런 훈련을 많이 해서 그런 감정이 정말로 모든 행동을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는데, 순수한 무 동기의 상태는 해결 방식이 다른 것 같다. 이것은 객관화를 하면 할 수록 오히려 더 괴로움을 느끼게 된다. 왜? 성과물이 없다는 사실에 스스로 실망하고 마는 것이다.

이건 또 다른 vicious cycle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이걸 내버려둔다면 나는 정말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환경을 통제하는 대신에 환경이 나를 통제하게 되는 것이다. 우선 내가 해야할 일은 머릿 속에서 최악의 상황을 그려놓고, 두려움의 감정의 원천이 되는 근본 원인을 파고 들어야 한다. 그러한 두려운 감정이 왜 드는 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유가 존재한다. 그걸 해결하려고 노력했다기 보다는 덮으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모래로 불씨를 덮더라도 여전히 불씨는 살아있고, 언제라도 불이 날 수 있는 상태다. 지금의 회로 상태는 많이 망가져 있는 상태기 때문에 motivation을 다시 복구할 수 있는 쉬운 일, 그러나 근본 원인을 해결하는 목적에 부합하는 일들을 하여 어느 정도 긍정적인 보상을 (스스로에게) 줄 필요성이 있다. 다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들을 나열해보고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들을 먼저 정의를 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나 자신의 문제로 귀인하기 보다는 (이미 충분히 자책은 많이 했음) 지속적으로 best-effort를 하는 것이다. 과거의 나는 나고 나는 오로지 현재의 나를 컨트롤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의사결정들이 모여 다시 미래의 나를 만들 것임을 굳게 믿는 것이다.